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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라고 격려하십니다
주면 그대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잘 측정하고, 누르고, 함께 흔들어서, 뛰어 넘을 것입니다.여러분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치수로 다시 측정될 것입니다.누가복음 6:38 (뉴 킹 제임스 버전)
위 구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라고 격려하십니다.그 경전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교훈은 바로 기부입니다.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관행입니다.하지만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기부를 연습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교회에 십일조와 헌금을 바치는 것은 우리가 바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이것이 바로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떠난 이유입니다.그러자 마음이 흔들린 모든 사람이 왔고, 영이 기꺼이 하는 모든 사람이 와서... 회막 사업과 그 모든 봉사와 거룩한 옷을 위해 주님의 예물을 가져왔습니다.그들은 기꺼이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큼 남녀 모두 와서 귀걸이와 코 고리, 반지와 목걸이, 모든 금 보석... 제물을 주님께 가져왔습니다.”(출애굽기 35:20-22, NKJV).
다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중에는 부족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땅이나 집을 소유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으니, 누구든지 필요로 하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4:34-35, NKJV).초대 교회에 재산을 소유했던 사람들은 그 재산을 팔고 그 수익금을 가져와서 교회를 후원했습니다.우리는 또한 사회의 가난하거나 궁핍한 사람들, 부모, 형제 자매, 친구, 가족 및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할 수 있습니다.안타깝게도 교회는 사람들이 교회에 바치는 것은 편하지만 이웃은 무시할 정도로 십일조와 헌금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해 왔습니다.
십일조와 헌금을 넘어서
많은 신자들은 십일조와 헌금을 바치는 것을 가장 높은 형태의 기부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우리가 십일조와 헌금을 다른 형태의 기부보다 먼저 내도록 하는 것은 종교입니다.교회는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중요한 측면으로 기부를 강조해야 합니다.따라서 십일조와 헌금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기부도 가능합니다.그렇게 될 때 신자들은 십일조와 헌금에만 집중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물의 형태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사회의 가난하거나 궁핍한 사람들, 부모, 형제 자매, 친구, 가족 및 다른 사람들에게 바치는 것과 실제로 동일시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배가 고프고 네가 나에게 음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목이 말라서 술을 주셨고, 나는 낯선 사람이었고 네가 나를 데려갔고, 나는 알몸이었고 너는 나에게 옷을 입었고, 나는 아프고 너는 나를 방문했고, 나는 감옥에 있었고 네가 나에게 왔기 때문이다.”“그러면 의인이 예수님께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여, 언제 주님이 배고프시고 먹이시거나 목이 마르시고 술을 마시는 것을 보셨습니까?우리는 언제 당신을 낯선 사람으로 데려가거나 알몸으로 옷을 입는 것을 보았습니까?아니면 언제 당신이 아프거나 감옥에 있고 당신에게로 오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리고 왕이 대답하여 그들에게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가 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한 명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일이다. '(마태복음 25:35-40, NKJV).
이웃에게 하나님과 같이
요한은 또한 이 점을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쟁이니, 자기가 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그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요한 일서 4:20, NKJV).위선의 사슬을 깨고 자기 정직으로 새 삶으로 나아가십시오 참조) 는 우리가 동료 사람들에게 바치지 않고 하나님께 바치도록 만드는 위선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웃에게 바칠 때 실제로 그것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을 동료 사람들에게 부인할 때,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부인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동료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바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대가로 우리에게 보상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진심으로 행하십시오. 왜냐하면 주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기업의 상을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진심으로 행하십시오.골로새서 3:23-24 (뉴 킹 제임스 버전)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질 축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부하는 행위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그들은 자신이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끼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사실 기부를 연습하기 전에는 우리가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 않습니다.자원이 충분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기부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그렇게 할 것을 염두에 두면 항상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그런 다음 우리의 목표는 우리 주변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두 그룹의 사람들
흩어지면서도 더 많이 늘어 있는 분이 계시고 옳은 것보다 더 많이 버티시는 분이 계시지만 그것은 빈곤으로 이어집니다.잠언 11:24 (새 킹야고보서)
위의 성경에서 솔로몬은 두 그룹의 사람들을 묘사합니다.첫째, 나눔을 통해 자신이 가진 것을 흩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비록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흩어놓더라도 잃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점점 더 커집니다.반대로 얻는 사고 방식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붙잡지만 결국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역설입니다!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씨앗을 뿌리거나 퍼뜨리는 길을 통해서만 증가하도록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남아있는 동안 씨앗과 추수, 추위와 더위, 겨울과 여름, 낮과 밤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창세기 8:22, NKJV).따라서 씨앗을 뿌리지 않고 붙잡아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우리 모두는 이 중요한 원리를 의식해야 합니다.
코넬리우스의 간증
가이사랴에는 이탈리아 연대라고 불리는 고넬리우스 (Cornelius) 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독실한 사람이자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에게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하루 중 아홉 번째 무렵에 그는 시현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들어와 “고넬리우스!” 라고 말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요셉이 그를 보고 두려워서 “주님, 이게 뭐지?” 하고 물으셨습니다.그래서 그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기도와 자선들이 하나님 앞에 기념하기 위해 떠올랐습니다.사도행전 10:1-4 (새 킹 제임스 버전)
코넬리우스는 단순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했습니다.저는 그가 기본적으로 그렇게 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는 기도하고 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그의 기도와 기도에 주목하셨다.그래서 천사는 시현에서 자신의 기도와 자선이 실제로 기념으로 하나님 앞에 왔다고 말했습니다.저는 고넬료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지만 기도와 자선을 베푸는 것을 합쳐 하나님 앞에서 고넬료를 분리시켰다고 생각합니다.참으로 간증입니다!따라서 기부하는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한다는 것을 압니다.참으로 기도를 실천할 수 있다면 (기도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부의 원칙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열쇠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그것은 우리가 그 위대한 축복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주저하지 않고 우리에게 큰 축복을 맡기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축복의 문을 열어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불을 계속 태우자!